돌멩이 하나

퇴사를 했다

미래에서 온 개발자 2025. 1. 2. 00:13

개발자로 첫 발을 뗄 수 있게 해준 회사를 나왔다. 10여 년만에 다시 직장인이 되어 안정적인 소속감을 느끼며 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원래는 25년 상반기 정도에 이직을 할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조금 일찍 움직이게 되었다. 작은 규모의 팀이다보니 퇴사하기에 좋은 타이밍이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내가 시작해놓고 결국은 마무리하지 못하고 나온 부분들도 있어서 퇴사일자가 하루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재작년 여름, 첫 회사 입사를 앞두고 썼던 포스팅에서 '이직의 조건 4Cs'라는 아티클을 인용하여 Compensation(보상), Collegue(동료), Chance(기회), Culture(조직 문화) 등 네 가지를 기준으로 삼으라는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다. 이번에 이직을 하면서 '보상' 외의 나머지 조건들은 입사 전 외부에서 알아보기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번 이직은 감사하게도 내부 추천을 받아서 진행했던 건으로 상대적으로 회사 내부의 여러 가지 사정에 대한 이야기를 비교적 상세히 들을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내가 직접 들어가서 겪어야 아는 것들이 있기에 이직의 조건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이직을 하면서 내 안에 있었던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 회사의 비전이 나의 가치와 어느 정도 일치하는가 

- 회사의 비지니스 모델이 분명한가 

- 동료들과 만들어갈 하나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가 

- 대표의 비전을 비롯하여 조직 내 최종 의사결정자들의 결정이 전사 인원에게 어떻게 전파되는가 

 

 

채용 과정에서 3:1 인터뷰를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진행했는데(그것도 무려 퇴근 시간 이후에 ㅋㅋㅋㅋ), 면접관이 면접자를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으로 대해주셨다. 2시간 반 가까운 시간 동안 온갖 이야기들을 중구난방 나누었는데 이런 사람들과 같이 일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볼 때 내 마음에 기대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인터뷰를 보기 며칠 전 박찬욱 감독의 여러 작품에서 시나리오를 쓴 정서경 작가가 출연한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이 인터뷰에서 그가 말한 동료들과 만들어가는 하나의 세계가 내가 이루어내고 싶은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기 위해 시나리오 작가가 글을 써야 하고, 비주얼 스탭들이 공간을 만들어야 하고, 배우가 인물을 연기해야 하고, 음악과 사운드가 입혀져 관객들에게 선보여지기까지의 그 모든 과정들. 사용자에게 내놓을 하나의 서비스를 위해 나도 하나의 역할을 맡아서 내 몫을 해내고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동료들과 나누는 경험이 내가 이 순간 가장 원하는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 

 

위의 질문들에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있지만 불확실성을 견디는 능력은 지난 7~8년 간의 프리랜서 생활로 단련이 되었다. 확실한 것은 금방 당연하게 여겨지고 이내 지루해진다.

 

이번에도 똑같은 다짐을 해본다. 내 자신이 좋은 동료가 되고, 좋은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며, 좋은 문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지. 내가 한 선택을 믿고, 그 선택이 최선이 되게 행동할 것이다.